오랜만에 찾아온 아트 딕셔너리에서 알아볼 미술 용어는 바로 ‘아우라(Aura)’입니다. 오랜 시간 기량을 닦으며 활동을 해온 배우를 무대에서 직접 보았을 때 우리는 그에게서 ‘아우라가 느껴진다’고 합니다. 때론 초고가의 상품이나 차를 보고 ‘아우라가 있다’고 말하기도 하죠. 아우라에 대한 정확한 뜻은 몰라도 이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모두 그 의미를 고급스럽거나 카리스마가 있는, 혹은 압도하는 느낌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익숙하게 사용하는 ‘아우라’라는 단어는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였습니다. 일상에서 종종 사용하는 단어인 아우라가 미술사에서 어떤 논의를 거쳐왔는지 살펴보며, 오늘날 미술 작품의 아우라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대배우를 실제로 만났을 때, '그에게서 아우라가 느껴진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사진 출처 : 아티스트컴퍼니)
‘아우라’의 철학적 사용
‘아우라’라는 용어를 미술 철학 용어로 처음 사용한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Reproduzierbarkeit)』에서 1930년대 당시를 ‘기술복제 시대’라 칭하고, 흔들리는 예술의 권위와 예술의 대중화를 설명하는데 ‘아우라’ 개념을 사용했습니다.
‘아우라’라는 개념을 미술 철학 용어로 처음 사용한 발터 벤야민
아우라는 벤야민이 사용한 독특한 철학적 개념이지만 벤야민이 직접 만든 개념은 아닙니다. 본래 종교적 의미를 가진 아우라는 사전적으로는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뜻하는데, 중세 시대의 성화에서 그리스도나 성인, 천사들 머리 주위에 있는 흔히 ‘후광’이라고 불리는 이 둥그런 원, 또는 빛이 바로 종교적 의미에서 아우라입니다.
중세 시대 성화에서 보이는 후광은 종교적 의미에서 아우라이다.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Lamentation>, 프레스코, 1305
우리가 ‘아우라가 느껴진다’라는 표현을 할 때는 그 대상이 가진 위엄을 나타내고 싶거나 존경심을 표현하고 싶을 때, 즉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은 미술작품에서도 ‘아우라’를 느껴본 적이 있으신가요?
벤야민은 예술 작품이 지닌 아우라의 근원을 '현존성'과 '진품성'에서 찾았습니다. 지금까지 예술 작품은 늘 원작자가 아닌 타인에 의해 복제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원본을 똑같이 복제했다 하더라도 복제품은 진품이 아니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결국 진품은 이 세상에 단 하나만 존재하는데, 바로 이 지점이 예술 작품이 가진 아우라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벤야민은 이를 두고 원작(original)이 지금 여기 존재한다는 사실이 원작의 진품성이라는 개념의 내용을 이루며, 이 진품성이 바로 그 대상이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예술 작품의 정체성이라고 설명합니다.(1)
그런데 이러한 예술 작품의 아우라는 ‘사진’이 발명되면서 전환을 겪습니다. 벤야민은 사진과 영화가 발명된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이 이전의 예술과 다른 점을 아우라의 유/무로 설명했고, 20세기 예술작품이 처한 상황이 바로 “아우라의 붕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복제 기술이 아우라의 특징인 현존성과 진품성을 뒤흔든다고 보았던 것이죠. 복제 기술은 복제 대상(=원본)이 일회적으로 나타나는 대신 대량으로 나타나게 함으로써 예술작품의 현존성을 무너뜨리고, 수용자로 하여금 그때그때의 개별적 상황 속에서 복제품을 쉽게 접하게 함으로써 그 복제품을 현재화했으며, 그로 인해 원본성은 무너지게 됩니다. 그는 이 두 과정, 즉 복제품의 대량생산과 복제품의 현재화가 전통을 엄청나게 뒤흔드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설명합니다.(2) 오늘날과 같은 디지털 사진이 아니더라도, 사진은 네거티브 필름만 있으면 언제든 원본이 여러 개 탄생할 수 있는 점을 생각하면 왜 그가 아우라의 붕괴 원인으로 사진의 발명을 이야기했는지 쉽게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벤야민은 아우라 상실의 시대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과거에는 종교인이나 귀족 등 특권층만이 예술 작품을 가까이할 수 있었고, 일반 대중은 특권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예술 작품에 접근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대배우를 실제로 봤을 때 아우라를 느끼는 마음도, 그 배우가 쉽게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사진이라는 매체가 발명되면서 진품과 똑같은 지위를 가지는 또 다른 진품을 일상 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디어가 발달하면 할수록 감상자와 이미지 사이 간격은 더 좁혀지고 있고, 오늘날 우리는 예술 작품 이미지를 잡지, 광고판을 비롯해 핸드폰 속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예술이 숭배의 대상이었다면 오늘의 예술은 점차 전시와 감상의 대상이자 나아가 재미와 놀이의 대상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렇게 예술작품이 아우라를 상실함으로써 대중도 예술 작품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게 되었고, 일종의 ‘예술의 민주화’가 진행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벤야민은 이를 두고 ‘아우라가 완전히 소독’되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벤야민이 ‘아우라가 완전히 소독’되었다고 말한 외젠 아제(Eugène Atget)의 사진. 아제는 일상 풍경을 사진으로 찍었는데, 역사적 사건의 증거물로서 사진 즉 그 당시의 기준으로 예술적 의미보다 정치적 의미를 지닌 사진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외젠 아제, <오르간 연주자>, 1898
아우라의 복원
그런데, 벤야민이 탈아우라의 순간을 말한 20세기 기술복제 시대 이후 오늘날까지 아우라는 정말 사라졌을까요? 여전히 우리는 아우라를 긍정적인 가치를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하며 다양한 대상과 상황에서 아우라를 느낍니다. 벤야민은 기술복제 시대에는 예술작품을 손쉽게 볼 수 있기 때문에 아우라가 상실될 것이라고 하였지만, 복제된 예술작품을 자주 볼 수 있기에 우리는 더욱더 원본을 보고자 하는 욕망을 느끼기도 합니다.(3) 모나리자 이미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그 원본을 보기위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루브르 박물관으로 몰려드는 상황처럼 말이죠.
모나리자 원본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오늘날 아우라는 오히려 대중적으로 더 널리 쓰이는 용어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자본주의 체제와 연결해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아우라는 뭔가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활용되고 있고, 그 활용 결과가 나쁘지 않기 때문에 자본이 결코 아우라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죠(4). 고가의 자동차나 시계부터 대중문화에서 스타를 만들어내는 일까지 소비재 산업과 문화 산업에서 상품을 홍보하고 판매하기 위해선 아우라를 만들어내는 일이 꼭 필요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예술의 영역은 어떨까요? 무한한 복제 가능성이 그 특징이었던 사진 조차 인화 수를 제한하거나 네거티브 필름을 파괴함으로서 원본의 아우라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며 개개인이 느끼는 특별하고 심미적인 경험을 아우라라고 한다면, 작품을 통해 느끼는 아우라는 절대 사라지지도 ‘표백’되지도 않을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술만이 줄 수 있는 일종의 고유한 경험이고, 많은 사람들이 이 고유의 경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아우라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미술 철학 용어로 끌어온 벤야민이 선언한 ‘아우라의 몰락’ 이후 아우라는 다양한 영역에서 변화해 왔습니다. 벤야민이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예술의 민주화와 아우라의 상실은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아우라가 복원되었다고해서 예술의 보수적인 특권적 지위까지 과거 그대로 복원되지는 않았습니다. 오픈갤러리에서 제공하는 미술품 렌탈 서비스는 고가의 미술작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일상 속에서 쉽게 감상할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예술의 대중화와 민주화를 실천하면서도 원본과 진품이 지닌 예술 고유의 아우라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렌탈 서비스로 나의 일상에도 아우라를 경험할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1) Benjamin, W., 『발터 벤야민 선집2: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사진의 작은 역사 외』, 최성만 옮김, 길, 2007, p.45. (2) Benjamin, W., p.47. (3) 방종현, 「변화된 미술 환경에서의 예술작품과 아우라(Aura) 연구」, 기초조형학연구 : 한국기초조형학회 연구논문집 v.9 no.3 , 2008년, pp.143 (4) 심혜련, 『아우라의 진화-현대 문화 예술에서 아우라의 지형도 그리기』, 이학사, 2017, p.186.